독서

[책 리뷰] 유령의 마음으로 - 임선우 / 랑과 나의 사막 - 천선란

쏘매띵 2023. 2. 27. 14:42
 
유령의 마음으로
신인 소설가 임선우의 첫 소설집 『유령의 마음으로』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미 임선우라는 이름과 마주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2019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임선우는 고요하고도 능청스러운 환상을 부려 놓은 소설들을 착실히 발표해 왔으며, 풍경이 다른 섬들처럼 다양한 매력을 지닌 여덟 편의 작품들이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엮여 나왔다. 현실은 막막하고, 관계는 지난하고, 일상은 그 모든 막막하고 지난한 것들이 반복되는 무대다. 평범한 일상에 “아무런 예고 없이”(평론가 황예인) 펼쳐지는 임선우식 환상은 “‘나’와 타인의 관계의 문을 열어 주는 매개”임과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위한 역할로서 작용”(소유정)한다. 이러한 평가는 곧, 타인과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소멸해 가고 있는 현실에 임선우의 소설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에 대한 답이 되어 준다. 유령, 변종 해파리, 나무가 된 사람 등 환상적 존재들은 일상적인 사건처럼 삶에 스며 인물들을 긴긴 생각에 잠기도록 만든다. 왜 내 삶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와 똑같이 생긴 유령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쉬이 끝나지 않는 고민들은 점점 인물의 삶 전반에 대한 고민으로 넓어지고, 독자들의 곁에도 어느새 책 속 유령이 건넨 따스한 생각들이 깊숙이 스며 있을 것이다.

 

저자
임선우
출판
민음사
출판일
2022.03.25

 

책두께가 1.5cm, 280페이지가 되지 않아 편히 읽기 좋았다. 짧은 소설들이 모여있어(각 소설들이 내용이 이어지진 않음) 금세 후루룩 읽기 좋았다. 요즘에 한국 여성작가의 책이고, 너무 무겁지 않으며 불편하지 않은 소설을 읽고 싶었다. 어쩜 내가 찾던 그 책이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 책의 이름이기도 한 맨 처음에 나와있는 소설이다.

'유령의 마음으로'  빵집 알바를 하는 주인공 앞에 자신의 모습과 같은 '유령'의 존재가 등장한다. 자신은 유령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주인공은 계속해서 유령이라 부른다. '유령'은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솔직한 모습을 보인다. 화를 참는 주인공을 대신해서 화를 내고, 슬프면 주인공 대신 운다. 주인공은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유령'을 통해서 눈으로 확인한다. 여기서 '유령'은 대체 왜 나타났는가에 대한 의문이 드는데 그건 이야기가 진행되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유령'이 주인공의 감정을 대신해서 솔직하게 분출한다는 건 주인공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고, 분출을 위해 찾아온 것이라 생각한다. 주인공에게는 몇 년 전부터 사귀어온 남자친구가 있다. 지금은 식물인간이 된 상태로 주인공은 일주일에 한 번씩 병문안을 꼭 오고 있다. 식물인간이 된 남자친구를 2년을 기다렸으나 깨어나지 않는 남자친구를 보고 이 관계를 그만하고 싶지만 죄책감과 미안함 때문에 그만두지 못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온 것이다. '유령'이 주인공의 마음을 정리하게 도와주고, 주인공은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한다. 남자친구의 부모님도 그런 주인공을 이해한다. 

2년 동안 사랑하는 사람이 병상에 누워있으며 일주일마다 보러 온다. 그게 솔직히 말은 쉽지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신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힘든 게 아니라 그저 작은  희망을 주먹으로 품고 울적함과 슬픔 속에 다이빙하듯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곧 깨어날 거야. 곧 깨어날 거야.라는 믿음과 희망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기화해 버리고 지쳐버린다. 물론 제일 힘든 건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과 가족들이지만 애매한 건 주인공인 듯하다. 애매하게 우울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입장.  

암튼 이런 주인공의 입장에 감정이입을 하다 보니 주인공의 남자친구에 대한 미안하고 복잡한 마음이 느껴졌다. 시작할 때는 같이 시작한 관계가 주인공 혼자 정리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런 주인공을 위해 스스로 혹은 신이 마음을 정리해라. 라면서 보내준 게 '유령'이 아니었을까. 한다.

 

 

 


 

 

 

 
랑과 나의 사막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마흔세 번째 소설선, 천선란의 『랑과 나의 사막』이 출간되었다. 2022년 『현대문학』 1월호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이번 작품은 ‘전쟁의 시대’에 만들어졌다가 기능이 정지된 채 사막에 파묻혀 있던 로봇 ‘고고’에게 생명을 준 인간 ‘랑’이 사망하자, 랑이 가고 싶어 했던 과거로 가는 땅을 찾아 고고가 홀로 길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2019년, ‘국내 SF 아포칼립스의 정석’이란 극찬을 들은 『무너진 다리』로 혜성처럼 등장한 천선란은 뒤이어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밀려드는 감정의 파도에 그대로 잠기고 싶은 소설”(김초엽) 여덟 편을 담은 『어떤 물질의 사랑』을 발표하며 빠르게 자신의 문학세계를 독자들에게 각인시켰다. 장르소설 중 손꼽히는 판매고를 기록한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작 『천 개의 파랑』은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 해도 믿을 법했다”(김보영) “더 이상 ‘좋은 한국 SF의 가능성’이란 얘기는 듣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김창규)라는 찬사까지 이끌어내며 가능성이 아닌, 완성형의 상태로 우리에게 도달한 ‘준비된 작가’라는 평을 얻게 했다. 천선란의 활발한 횡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나인』 『노랜드』에까지 계속 됐고, 이제는 더 이상 장르소설의 자장 안에서만 논해지는 것을 거부한 채, 자신의 문학 스펙트럼을 확장시키며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전무후무한 작가가 되었다. 흔히들 SF 소설은 인간을 위협하는 로봇과 외계인이 등장하고, 우주 세계 어딘가가 배경이고, 다루는 세계관마저 낯설어 순문학 독자들이 읽어내기에는 장벽이 있다고들 말한다. 천선란의 소설 역시 무수한 로봇이 등장하고, 외계인이 등장하고, 배경 또한 낯설지만 기존의 선입견을 넘어선 결과를 내고 있다. 이상하리만치 그의 소설은 잘 읽히고, 게다 뭉클하다.
저자
천선란
출판
현대문학
출판일
2022.10.25

 

 

이 책은 주인공인 로봇'고고'의 주인 '랑'이 사망하면서 시작된다. 배경은 몇 세기가 훌쩍 지난 황폐화된 지구, 사막이다. '랑'의 친구와 함께 주인공은 '랑'의 장례를 준비한다. 장례를 준비하며 지난 랑을 기억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나온다. 로봇이 저럴 수 있나? 마음대로 예전의 메모리들이 출력이 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책을 계속 읽다보면 말하고 있는 화자 주인공이 로봇인지 사람인지 헷갈리게 된다. '랑'이 살아 있을 때 주인공에게 너는 전쟁시대에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라고 한 적이 있다. 주인공을 '랑'이 발견했을 때는 모래더미에 묻혀 있었는데 꽤나 오랜 시간 묻혀있었기에 진짜 무슨 목적으로 주인공이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했다. 그렇게 주인공은 '랑'의 말을 믿은 체 과거로 갈 수 있다는 땅을 향한다. '랑'을 만나기 위해.

그런 목적이면 사실 로봇이 아니라 그냥 사람 아닌가? 싶었다. 사실 글 속에서는 로봇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극 T인 인간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마지막에 결국 외계인을 만나면서(외계인은 생뚱맞지만 엄청나게 먼 미래이니까 이해된다. 심지어 사람처럼 생겼다.) 주인공이 만들어진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 전쟁시대에 만들어져서 사람을 품는 로봇으로 만들어졌던 것. 사람을 사랑하고 살리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제야 사랑을 목적으로 한 주인공의 그동안의 행동들이 이해됐다.

주인공은 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주인이며 친구며 부모였던 '랑'을 그리워 한다. 그러한 자신을 보고 의아해하는 생각은 하지만 이윽고 다시 그리워하고 과거로 가는 땅을 목적으로 이동한다. 이 책의 모든 중심은 그리움이라는 건데, 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그리움은 다른 감정들에 비해 유효기간이 길다.' 과연 정말 길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황토색의 모래 언덕과 계속해서 들이닥치는 모래폭풍. 저 너머 파란 하늘이 자꾸 상상이 되며 정처 없이 걷는 주인공'고고'가 그려진다. 

이 책도 위의 책처럼 얇아서 금방 후루룩 읽었다. 연금술사나 순례자 책 이후로 사막을 배경으로 한 소설책은 오랜만이어서 신선했다.